“슈퍼 엔저” 접고 엔화 강세 돌입
2024 블랙먼데이… 전날은 매도, 다음날은 매수 사이드카?
과거 달러와 함께 기축통화 지위를 다투었던 엔화는 최근 지속적인 엔저 현상을 겪으며 안전자산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됐다. 올해 7월에는 1달러당 160엔대를 기록해 37년 만에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이에 따라 슈퍼 엔저 현상이 발생했다. 엔저 현상이 지속됐던 이유는 과거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방안’과 일본은행(이하 BOJ)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엔저 심화에 대응해 지난 3월 오랜 기간 지속해 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내고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나 엔저 현상은 지속됐다. 결국 하반기인 7월 기준금리를 연 0.25%로 추가 인상했으며 이에 따라 슈퍼 엔저는 막을 내리게 됐다. 곧 엔화는 강세에 돌입하게 됐지만 엔 캐리 청산, 증시 폭락 등과 같은 부차적인 현상이 발생해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기축통화의 위상이 약화됐던 일본 엔화가 어떻게 현재와 같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일까?
막 내리는 슈퍼 엔저, 일본은 그동안 왜 마이너스 금리를 펼쳤는가?
일본은행은 지난 3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거쳐 2016년 2월부터 기준금리를 -0.1%로 유지하던 마이너스 금리를 약 8년 만에 종료했다. 과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평소보다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을 무렵에도 일본은 금리 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 주변국이 양적 긴축을 펼치는 상황에서 일본은 양적 완화를 펼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의 경제성장 측면과 관련돼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0%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장기 저성장 국면에 처해있었다. 일본은 그간 낮은 물가상승률과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는데 이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물가를 잡기 위한 주요 정책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저금리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일본은 ‘양적 완화’을 진행하기 위해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해 왔다. 결국 일본 정부의 돈 풀기 정책으로 인해 엔화 가치는 하락하게 됐고 37년 만에 역대 최저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행의 새로운 통화 정책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발발
최근 일본의 경제 상황은 지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일본은행은 양적 긴축 방안을 공표하며 월간 6조 엔에 달하던 장기국채 매입 금액을 2026년 3월까지 약 2.9조 엔으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3월 마이너스 금리 종료 이후 일본은행 우에다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초금융완화 정책 정상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인 일본에서 돈을 빌려 고금리인 미국 등의 해외자산에 재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엔 캐리 청산을 위해서는 엔화를 매입해야 하므로 급격하게 엔화 값이 상승하게 됐다. 또한 엔 캐리를 통해 증시에 유입됐던 자금들이 대거 빠져나가게 되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2024 블랙먼데이, 민낯 드러난 한국 증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과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의 시기가 맞물려 미일 금리 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물론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로 엔 캐리 청산이 진행돼 지난 8월, 2024 블랙먼데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세계는 물론 한국 금융 시장 왜곡의 단면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5일 월요일 국내 코스피 지수의 경우 8.77% 급락했고 코스닥은 11.3% 급락했다. 일본의 닛케이225 지수는 12.4% 폭락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대만 자취안지수는 8.35% 급락했다. 결국 급락장으로 인해 4년 4개월 만에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그러나 증시 폭락 하루 만에 일본은행 부총재의 발언으로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거치겠다는 부총재의 발언이 시장을 안심시킨 것이다. 개장과 동시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급등했고,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또한 실제 경기 지표에 비해 시장의 공포가 과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잇따르자 투자자의 심리가 변화하게 됐다.
이번 사건을 통해 금융시장 내 일본은행의 강한 영향력이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엔저 현상이 지속됐을 당시에는 일본은행 정책의 파급효과가 과소평가 됐는데, 이번 상황은 달랐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은 아시아 증시의 폭락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한국 증시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5일 목요일, 외국인 투자자들은 1조 5000억 원가량을 순매도했고, 이에 따라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급락했다. 지금까지도 국내 증시의 외국인 매도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는 역대 최대를 기록해 한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한국 증시의 결점이 드러났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9월 코스피 지수가 억눌린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 대량 매도이다. 한국 증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국내 개인투자자의 장기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는 변동성에 대한 증시 방어력을 기르고, 주가 상승을 불러일으켜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