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백] 용서하려 했지, 잊자 한 적 없다
통탄스럽다. 제 아무리 중도적 성향으로 유지하려 했던 나조차, 학생 언론인으로서 완곡하고 잘 다듬어진 말을 하려했던 나조차,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정치 성향과는 무관하게, 우리 선조들은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쳤고, 그들의 피와 땀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일제는 분명 우리를 침략하고, 수탈했으며, 우리 민족을 핍박했다. 이 역사를 되새기며 선조들에게 백번이고 감사해야 할 우리의 역사를, 누군가는 지우려 하고 있다. 마치 일제에 나라를 팔아 제 이익을 챙겨갔던 이들처럼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크게 대두되고 있는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 시절 처음 등장한 신우파를 일커는 말로, 이들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미화하고, 식민 지배 시절을 부정적인 사건이 아닌 발전의 계기로 왜곡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일제의 지배가 한국의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역사와 선조들이 겪은 고통을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과거의 잘못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며,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특유의 경향성을 띤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역사 왜곡이 현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뉴라이트적 외교가 과거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경제적 이익과 맞바꾸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본과의 외교에 있어 현 정부는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 대신 정치적 유리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국민적 자존심은 철저히 무시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역사를 사용하고 있다.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가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에 기초한 외교 정책은 대내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외교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입지 또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현 정부의 역사 왜곡이나 외교적 실패는 국민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깊이 훼손하고,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볼 수 있다. 특히 제대로 지식과 사고관이 형성되지 않은 젊은 세대의 경우, 왜곡된 정보가 필터링 없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 만큼 잘못된 지식과 사고관이 주입될 위험에 처해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역사 왜곡 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지우려는 노력, 건국일의 왜곡, 이승만 전 대통령의 평판을 격상시키는 시도까지, 그릇된 역사 해석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러한 왜곡은 단순히 과거사 문제를 넘어, 국민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더 나아가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치욕스러운 역사를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우리가 바보가 되고 있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국적 역사관을 펼치는 이들이 사회의 요직에 있다는 사실은 고개를 떨구게 할 뿐이다. 이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역사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짓밟는 행위다.
우리는 잊자고 한 적 없다. 우리는 그저 용서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마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방문 때 무릎을 꿇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폴란드 사람들이 마음을 바꾼 것처럼 우리 역시 그들의 사과를 받아 그들을 용서하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마치 락스물을 부워 모든 상흔을 마구잡이로 지우려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국민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두 눈 크게 뜨고, 맑은 정신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완곡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러한 논란들이 일고 있는 것이 좌절스럽고 혼란스럽다. 거울을 보아야 할 것이다. 자기 얼굴에 뱉어버린 침이 제 얼굴에 떨어진 것마저 모를 정도인 듯하니 말이다. 우리는 선조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땀으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얻게 되었고, 수많은 이들의 분투로 성숙성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용서하려 했을 뿐, 그러려 노력했을 뿐, 잊으려 한 적 없다.